쟝 그르니에 <섬> 마지막 쪽. 1985년 대학교 입학하던 때 구입해서 몇 번의 시도 끝에 35년이 지난 2020년 제주도 섬나라에서 겨우 완독 한다.
” 섬들을 생각할 때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 격리된다 isolé > – 섬 Ile 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 혼자뿐인 > 한 인간. 섬들, 혹은 < 혼자씩일 뿐인 > 인간들. “
– 쟝 그르니에 <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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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처음 이주해 왔을때 복잡하고 묘한 느낌이 그르니에의 말처럼 딱 그랬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2020년 4월은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인류에게 가장 가혹한 시련의 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세포에 숙주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삶을 살 수도 없는, 제대로인 세포의 모양도 갖추지 못한 바이러스로 인해 현인류 문명의 근간이 가장 넓게 가장 깊게 그리고 거의 동시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물질문명의 끝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의 두 축 중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시작해 물질문명의 극에 달한 미주대륙의 한 나라에 이르러 가장 창궐해 수십만명이 감염되고 수백명씩 죽어가는 좀비 영화에서나 상상했던 일이 지금 리얼타임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장소로 주목받고 있는 거대도시 뉴욕은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촬영지인 것처럼 텅 비어 버렸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며 대형마트의 휴지를 싹쓸이해 집에 쌓아두기 바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 찬란한 문명국가의 선진정부도 그 나라의 세계 일등 시민을 자랑하던 개인도 모두 대혼돈 한가운데 있다.
20대와 30대에 걸쳐 나에게 일어난 두 가지 일로 그 당시 나에게도 지금 인류가 맞고 있는 것처럼 내 삶의 방향에 대해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져 버렸다.
아이의 아픔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살아가던 세상으로부터 벗어 나와 생경한 삶으로 내동댕이쳐져야 했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면 목숨을 걸고 사랑한 이와 가슴 아픈 이별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아무것도 나의 의사와 결정과 선택이 없었던 삶에서 탈출해 나의 판단으로 실천에 옮긴 두 가지 행동으로 나의 삶이 모두 끝난 듯 암울했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헤아릴 수 없는 상황에서 – 비록 내가 나의 의지로 감행한 결정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더욱 혼돈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목소리’가 인도하고 바라는 것은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이었다. 지옥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내야 하는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답을 구할 수 없었던 시간에,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절망의 시공간을 헤쳐 나와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부여되었다.
망망대해 외딴섬에, 나는 고립되었다.
고립된 섬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언제 어디서 그리고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 애초의 잘못된 매듭이 지어진 그 순간으로 다시 더듬어 올라가야 했다.
첫 번째, 나는 나의 삶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지 않았다. 온순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한 사람인 것과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병렬하지 못할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판단을 어른들과 주위 환경에 맡기고 무임승차하는 삶을 선택한 것, 그 느슨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아주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잘못된 실타래가 엮였다.
돌이켜보면 내 맘 깊은 곳에 미약하나마 나의 꿈과 바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강권에 힘없이 그들의 자리를 내주는 커다란 실수를 범했다. 결코 그러지 말아야 하는 나의 삶의 주인 자리를 타인에게 함부로 내어준 잘못을 범했다.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그 ‘목소리’를 통해 다시 본래 ‘나의 자리’를 되찾아야 했다.
두 번째,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으나 불꽃같이 일어난 열정의 감정은 진정한 의미의 영원한 사랑이 아니었다.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나의 바람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으나, 영원한 사랑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몰랐다. 매우 조심스럽고 한결같은 자세에서의 접근을 생략한 채, 온몸과 마음이 불타오르는 감정에 매몰되어 정반대의 방향에서 영원한 사랑을 찾았다고 여겼다. 같은 지점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방향타를 틀어 선악과를 버리고 대신 생명나무를 찾았어야 했다.
영원한 사랑으로 만나야 할 것은 나 밖의 타인으로 존재하는 그 누군가가 아니었다. 내 밖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 안의 나 자신 스스로였다는 걸, 그래서 사랑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였다는 것을 발견했어야 했다. 지독한 ‘타인 사랑’이 아니라 깊고 온전한 ‘자기 사랑’이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영원한 사랑의 실체였다.
남이 사는 삶을 따라가지 않고 대신 <나의 자리>를 찾아야 했으며, 목마른 사랑의 빈자리를 타인으로 메꾸는 대신 <자기 사랑>으로 스스로 충만한 평온을 얻는 것, 죽음과도 같았던 그 절망의 동굴에서 20년간 절규하며 간신히 깨달았다. <나의 자리>를 위해 남이 정한 자리를 버려야 했으며, 그 남이 정해준 자리에서 맺어진 관계들을 모두 정리해야 하는 고독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자기 사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영혼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벨탑을 쌓듯 사상누각이 될 수 있는지 뼈에 저리도록 경험해야 했기에 거듭되는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만의 기나긴 외로움의 시간을 거쳐 나와야 했다.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시간들이 고난과 시련으로 주어졌다. 주변을 정리하고,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를 찾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힘겨운 과정들을 통해 배워갔다.
그러자 침묵하던 ‘목소리’는 멀리서 어렴풋이 그 깨달음의 방향을 지지하듯 옅은 미소를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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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풍력발전소와 에메랄드빛 바다의 풍광을 끼고 걷는 월령리 선인장 마을은 꿈길을 걷는 듯 이국적이고 또 아름답다.
네 번째 길로 선택한 곳은 제주올레 14코스에서 비양도를 왼쪽 바다 너머로 계속 끼고 걷게 되는 월령리 선인장 마을에서 협재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5Km 바닷길 구간이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과 백년초 열매
선인장으로 유명한 이곳 월령리는 선인장의 자생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국내 유일의 선인장 야생 군락지이다. 선인장 씨앗이 원산지인 멕시코로부터 해류를 타고 이곳으로 밀려와 자라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이 뱀이나 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집 울타리인 돌담 옆에 심게 된 것이 군락지가 된 계기라고 전해진다.
6~7월엔 노란 선인장 꽃을 피우고 11월에는 열매가 보라색으로 익으며 달리는데 그 열매가 바로 ‘백년초’라 불린다. 색깔이 곱고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진 백년초로 마을 사람들을 갖가지 지역특산품들을 만들어 수익사업에 활용하는데, 제주올레 14코스의 절반을 지나 아침부터 시작한 올레꾼이 허기가 지고 몸이 조금 무거워질 즈음에 도착하게 되는 월령리에 다다르면 무엇보다 보랏빛 ‘백년초 국수’를 맛보기를 추천한다. 해풍을 전력으로 만들어내는 풍력발전소가 비취색 푸른 바다와 어울리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아름다운 점심은 제주올레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월령리를 벗어나면 비양도가 왼쪽에서 가는 길을 따라 계속 동행한다.
월령리를 벗어나면 왼쪽 멀리 제주도의 마지막 화산 폭발로 생겨났다는 비양도가 나타나며 네 번째 길의 종착지인 협재해수욕장까지 내내 도보여행자의 벗이 되어준다.
옥빛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금릉리에 이르기까지 약 2Km 정도 붉은 용암이 차가운 바다를 만나 굳어버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용암바위길을 걷게 되는데, 멀리선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던 이곳을 걷는 동안 돌 틈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파란 갯풀들이 눈에 들어오며,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마을을 이루고 바다에선 물질을 들판에선 밭농사를 지어가며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 온 제주 사람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 여긴 화산이 만들어낸 돌의 섬, 거친 바람의 섬, 설문대할망이 빚어낸 여인의 섬, 제주도였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된다. 무엇으로 살아갈지 앞이 캄캄하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 살아진다’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육지에서 내려온 무대책의 입도객을 넉넉한 인심으로 다독여주는 해녀할망들을 만난다. 그 길 위 해녀 할망들을 숨소리가 들리는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어쩌면 나도 이곳에서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하지만 새로운 꿈 꾸게 된 것 같다. 작은 희망이 이 돌길을 걸으면서부터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금릉해수욕장
돌길을 헤쳐오느라 조금 땀이 날라치면 하얀 백사장이 넓은 바다와 함께 그림처럼 갑자기 펼쳐지는데 이곳이 금릉해수욕장이다. 말 그대로 하얀 모래밭, 백사장을 지나 야자수 숲을 통과하면 연이어 협재해수욕장까지 바로 연결된다. 협재해수욕장은 몹시도 아름답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주위가 온통 카페와 식당들로 빼곡히 들어차 요즘은 금릉해수욕장에서 백팩을 내려놓고 걷는 여행을 마무리하는 때가 많다. 협재해수욕장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이곳 금릉해변을 잘 모르는지 여전히 예전 그대로 한산하고 여유롭다.
금릉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어린 왕자> 속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비양도를 백사장 건너 푸른 바다 위로 보고 앉아 있다가 오랜 도보여행으로 뜨거워진 발을 꺼내 배낭을 그대로 두고 투명한 바다 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며 가만히 나를 위로하는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성장과 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자기 자신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내가 가야 할 길을 비록 지금까지 많이 둘러 왔지만 마침내 찾아와 그 길에서 다시 처음부터 걸어가야 하는 초입에 서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 홀로, 다시,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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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의 시기는 내 마음속에 가장 감동적인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시기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 – 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 – 인생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서는 강렬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계속성 때문에 매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그 속에서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극도의 희열이란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비극적인 것과 구별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희열은 비극성의 절정인 것이다. 어떤 정렬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영혼 속에는 엄청난 침묵이 찾아든다.
그 침묵 속에는 무엇인가가 가득 차 있다. 그 침묵은 소리나 감동의 부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한다. 밟아가야 할 경력이니 창조해야 할 작품이니를 말한다. 요컨대 어떤 목적을, 하나의 목적을 가지라고. 그러나 이런 단계는 내 속에 가장 깊이 잠겨있는 것에 이르지는 못한다. 목적이라면 나도 어떤 순간들에 그것을 달성해 보았다. 그리고 또 (늘 헛된 것이기 마련인 희망이지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목적은 시간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가장 미천한 조건 속에서, 그리고 송두리째 은총의 결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리하여 어느 날 어떤 친구와 더불어 노르만디식과 비잔틴식 궁전들 즐비한 지중해를 굽어보고 있는 라벨로에까지 걸어 올라갔을 때 나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충만감을 맛보았다. 심브로네 테라스의 포석들 위에 가만히 엎드려서 나는 대리석 위에 춤추는 빛을 내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있었다. 그 투명함과 그 저항의 유희 속으로 가뭇없이 빠져들었던 내 정신이 문득 고스란히 회복되었다. 일체의 知性을 혼미하게 만드는 바로 그 스펙터클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탄생을, 나 자신의 탄생을 목격하는 듯했다. 어떤 다른 존재가 태어나는 것일까? 구태여 다른 존재랄 까닭이 무엇인가?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
– 쟝 그르니에 <섬> 중에서
* 찾아가는 길 : 출발점인 월령리 선인장 마을이나 종착점인 협재해수욕장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2번 서부 일주 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정도 소요되는 제주도 정서쪽 방향에 있다.
* 주위 추천 명소 : 금릉석물원 & 비양도
제주 서해안 영감을 주는 돌문화공원, 장공익 명장의 <금릉석물원>
평생을 정과 망치를 들고 현무암을 쪼개 그 속의 삶과 죽음, 제주도와 그곳 사람들을 담아낸 시대의 장인이 만들어 놓은 제주도의 보물 같은 명소 한 곳이 이 구간이 지나는 금릉리에 있다. <금릉석물원>이 바로 그곳이다. 돌로 표현한 삼라만상이라고 할까. 88년의 전 생애를 돌과 함께하며 어느 석공이 돌 속에서 드러낸 수없이 많은 제주 돌하르방의 모습을 그의 얼굴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10년 전 처음 제주올레를 걸을 때 만난 장공익 명장은 이제 그가 그렇게 바라던 대자연으로 돌아가고 계시지 않지만 삶의 고단함 속에도 지나는 젊은이를 격려해주신 그 넉넉한 웃음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제주도의 영혼을 대변하는 두 곳을 들라면, 동쪽에 <김영갑 갤러리>가 서쪽에 장공익 명장의 <금릉석물원>을 주저 없이 추천한다. 꼭 들러 한참을 머물며 삶을 바라보는 그분의 해학과 시선을 수만 번의 망치질로 조각해낸 작품들 속에서 만나보길 추천한다.
이 구간을 걷는 내내 함께 하는 비양도는 화산섬의 축소판이다. 한림항에서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해 불과 15분이면 가닿는 곳에 있다. 포구에 정박하면 섬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산책로를 따라 한시간쯤 한 바퀴를 산책하듯 느릿느릿 걷고나서, 비양도 봉우리로 올라가 섬 전체의 풍광을 다시 한번 즐길 수 있다. 가파도와 차귀도가 그랬던 것처럼 섬 밖에서 또 다른 각도로 제주도 본섬을 바라보는 기쁨이 여전하다.
* 다음 코스는 제주올레 19코스 조천 만세동산~북촌포구 (10km)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