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외돌개(오른쪽)와 해안절벽(왼쪽)

지금까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단산을 시작으로 제주올레10코스 산방연대앞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돌아 제주도의 북쪽과 동쪽을 거쳐 이제 정남쪽 서귀포에 이르렀다. <제주를 걷는 21가지 방법>중 일곱번째 길이자 제주바당길의 마지막으로 꼽은 곳은 제주올레7코스 외돌개~돔베낭골 약 3km 구간이다.

십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육지에서 바다를 건너온 모든 여행객에게 한반도 아래 이런 이국적인 풍광을 선물하는 보물같은 섬이 있다는 것에 감탄케하기에 손색이 없는 제주도의 핫스팟이다.

최근엔 코로나바이러스로 해외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는 신혼부부들이 제주도를 허니문장소로 잡고 다시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솔솔치 않게 들리는 가운데,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신혼부부들에게 최고 여행지로 손꼽혔던 제주도에서 당시 대절 택시기사가 반드시 들러 신혼여행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던 곳이 바로 외돌개이고 보면 그때로부터 40~50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이곳은 명불허전의 땅과 바다이다.

외돌개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황우지해안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청춘남녀들의 스노쿨링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선녀탕’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외돌개방향이다.

사람이 많아 왁짜지껄한 선녀탕은 건너뛰고 오른쪽 올레방향 데크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바다로 향해 툭 트인 해안절벽위 너른 바위가 나오는데, 길을 나선지 5분도 안되었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 가장 가까운 절벽바위로 나만의 자리를 잡고 편안히 누웠다.

돌베개를 베고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 멀리 섶섬과 함께 서귀포항에서 새섬으로 이어지는 새연교가 보이고, 외돌개앞 문섬과 함께 오른쪽으로 범섬이 나란히 호위무사처럼 서귀포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풍광이 펼쳐진다.

문섬과 범섬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지르게 되는 곳이다. 1년에 이런 날이 며칠이나 될까.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고요하고, 바다는 멀리 선명하게 푸르고, 잔잔한 파도소리가 온 몸을 휘감는 곳. 누구라도 예외없이 삶의 긴장과 근심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리라. 내 영혼과 몸과 마음을 통째로 대자연을 향해 열고 전부를 맡긴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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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길위에 설때마다 대자연으로의 풍광과 함께 시선은 언제나 내면을 향해 집중하려고 했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지천명의 오십대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인생의 롤러코스터 바퀴자국이 보였다. 그 흔적들을 되돌아 보면 앞으로의 발걸음은 어떤 곳으로 어떻게 달라져야할지 혹여나 영감이라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때문이었다.

무엇에 얽매였고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홀로서기가 그리 더디고 어려웠는지, 선악의 구별이 불가능한 요동치는 감정에서 벗어나 바깥에 대한 소유와 집착이 가져온 상처들을 치유하고 어떻게 평온한 자기사랑에 길로 간신히 이르게 되었는지, 몸과 마음과 생각에 배인 말초적인 감각들과 그 감각들 위로 자리잡은 중독들을 버리고 비우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 고립시켜야 했는지, 쉼없이 혼자만의 시공간으로 찾아 들어간 날들을 힘겹지만 도망가지 않고 다시 보아야 했다.

그렇게 지난 날들에 대한 시선이 오랜동안 켜켜이 머문 자리위로 아주 조금씩 그리고 옅게나마 희미하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미래였던 오늘과, 내일의 과거일 오늘을, 나는 매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거창한 철학적 명제나 화려한 존재의미의 부여가 아닌 앞으로의 나만의 생존방식을 발견해야 했다.

내안의 목소리가 오래전 요구한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 발견’이란 미션은 이제 구체적인 ‘매일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방향 설정’이란 차원으로 연결되며 이어지고 있었다.

생존투쟁과 자연선택의 결과인 진화에 대한 두 이야기 <종의기원>과 <이기적유전자> vs. 진화론의 돌연변이 이타주의자로서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야기  <기브앤테이크>

개별 절대종교의 창시자들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조물주(창조자)의 존재에 의심이 없는 나는 그런 나의 생각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두 사람의 책 <종의기원>과 <이기적유전자>를 오랫동안 일부러 외면하며 멀리해왔다.

과학적 추론의 방법으로 도달한 그들의 결론이나 그 결론에 다다른 과정의 논거가 문제가 아니라, 과학과 이성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 아닌 것은 모두 진리가 아니므로 불가능하다거나 존재할 수 없다는 그들의 사고의 한계내지 편협성 때문이다. 모르는 것과 증명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오만하거나 겸손치 못한 것이고, 우주의 섭리 또는 진리는 오만하거나 겸손치 못한 이에게 쉽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나의 태도 또한 그들의 입장에서 편협하게 보일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와 20세기 진화론의 두 거장 찰스다윈과 리처드도킨스의 논리로 보아도, 이제 지구라는 행성위 수십억년이란 기간동안의 진화의 결정체인 인류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방식인 인간문명의 형태가 이전과 현재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충분히 추론할 수 있게 한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한시라도 잊지 않는 것뿐이다. 각 유기체들은 기하 급수적인 비율로 개체수를 증가시키려 애쓰고 있고, 각 세대 동안이나 세대사이의 특정 시기에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하며, 파멸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생존 투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자연의 전쟁이 쉴 새 없이 일어나지는 않고, 죽음은 대개 순간적이며,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왕성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자가 살아남아 번영한다는 사실 말이다. “

– 찰스 다윈

” 언제든 서로 돕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개체가 많은 종이 거의 모든 종을 누르고 승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선택이다. “

– 찰스 다윈

이렇게 다윈 조차 스스로 여지를 두고 예견했던 것처럼, 수많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살아남은 ‘이기적유전자’의 운송수단인 인간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는 예상치 못한 극심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생존과 불멸의 영원성의 메커니즘을 보전하기 위해 또다른 변이 내지 진화의 과정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 같다. ‘이기주의’에서 ‘이타주의’로, ‘본능’에서 ‘(본래 의미의) 사랑’으로, ‘선악과’에서 ‘생명나무’로 말이다.

이제 이기적인 유전자는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이타주의적 삶을 선택할 때가 되었다. ‘이기적유전자’라는 단어에 동의하지 않지만 – 물론 기본적인 생존본능의 차원에서 모든 생명은 ‘이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전후로해서 삶의 존재방식, 즉 생존방법을 바꾸어야할지 모른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질문명에 터잡은 생존방식에서, 이타주의라는 사랑의 순환방식위에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서로 조화를 이룬 신문명을 향해 나아가기를 요구받고 있다. 도덕률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 말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무엇이 성공인가?>

인류문명의 거대한 전환점에서 깊고 담대한 조류의 흐름을 느낌과 동시에, 나의 생존방식 자체를 그 흐름위로 새롭게 그리고 조화롭게 정립해야하는 과제가 부여되었다고, 그리고 개별적이고 일시적인 <변화>를 넘어 통합적이고 항구적인 <진화>의 방향으로 삶을 살고 기여하는 나만의 진화론을 써내야 한다는, 점점더 분명해지는 내안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선택하기로 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기술>을 이야기하지만, 영화 <테이크쉘터>는 ‘사랑의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악몽의 밤과 무심한 일상의 낮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도 나만의 느낌과 목소리를 잃지 않아야 하고, 하지만 동시에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의 존재방식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담담히 그들의 목소리를 수용해야 하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쉼없이 나와 그들을 모두 사랑하는 방법에 감각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끝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외면하는 일도양단의 결정을 내리지 않는 열림의 상태을 유지하면서 아울러 균형과 조화의 상태를 잃지 않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점더 분명해지는 내안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선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며, 내가 진화를 통해 세상에 기여함으로써 불멸하는 생존 전략이라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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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나는 외돌개 해안절벽 바위 위에 누워 있고 햇살은 따뜻했으며 파도소리는 부드러웠다. <구운몽>이라도 꾼 것일까. 겨우 이십여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오랫동안 잠든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새롭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처음부터 걷는 것처럼 외돌개 해안절벽을 따라 돔베낭골에 이르기까지 다시 천천히 걷는다.

외돌개 해안절벽

* 찾아가는 길 : 서귀포 이마트옆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에 외돌개주차장이 있다.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30~40분쯤 해안절벽길을 걷다보면 데크길이 끝나고 ‘돔베낭골’이 나온다. 길이 멀지 않고, 걷는 방향에 따라 풍광이 다르므로 거기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왕복산책을 추천한다.

* 주위 추천 명소

– 새연교와 새섬 : 외돌개~돔베낭골 길이 짧아 아쉽다면 천지연폭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서귀포항으로 길을 잡으면 서귀포항과 바로앞 새섬을 잇는 새연교를 만날 수 있다. 석양무렵 비리지 않고 상쾌한 서귀포 바다바람을 맞으며 귀에 거슬리지 않는 ‘서귀포칠십리’ 노랫가락과 함께 새연교를 건너 새섬 한바퀴를 산보하듯 걸어보자. 걸어서 불과 15분 남짓, 온가족 모두 편안하게 걸을수 있는 서귀포시민들이 즐겨찾는 숨은 명소이다.

– 서귀포유람선 : 새연교 바로 앞에서 매일 기상에 따라 서귀포항을 벗어나 문섬을 한바퀴 돌아오는 유람선을 탑승할 수 있다. 스킨스쿠버의 성지로 알려진 문섬의 주상절리와 함께 멀리 한라산 백록담의 실루엣은 시끌벅쩍한 관광객들과 함께하는 조금의 불편함이 무색해질만큼 바다에서 바라보는 서귀포항과 한라산 전체의 황홀한 남쪽 경관을 만날 수 있다. 가기전에 미리 운항여부를 꼭 확인하자. (연락처 064-732-1717)

– 왈종미술관 : 제주의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중에 놓치지 말고 가보아야할 곳중에 한 곳이다. 20여년동안 화가가 꿈꾸는 제주도에서의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전시된 작품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냥 알게 된다. 작품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노화백의 손길에서 어떻게 이런 순수하고 맑은 화풍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서귀포 정방폭포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니 동선이 맞을때 꼭 한번 들러보자. (연락처 064-763-3600)

– 네거리식당 : 제주도에서 맛집으로 오직 한 곳만 추천해야 한다면 언제나 이곳 <네거리식당>의 갈치국을 서슴없이 뽑는다. 갈치로 국을 만든다니, 그 이름만으로도 비릿하고 고개가 저어지겠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직접 경험하면 이구동성 절로 감탄하며 다시 찾게 되는 제주향토별미이다. 흔한 메뉴말고 반드시 <갈치국>을 먹어봐야 한다. (연락처  064-762-5513)

– 제주정원&카페 베케 : 여미지식물원에서 오랜동안 갈고 닦은 가드닝솜씨를 서귀포감귤밭에서 뽐내어 놓은 김봉찬대표의 제주식물정원 <베케>를 들러보자. 천혜의 자연 제주도에서 사람의 손길로 아름다움이 더해진 몇 안되는 종묘원을 함께하는 가드닝공간이자 카페이다. (연락처 064-732-3828)

* 이제 다음 여덟번째길부터는 제주올레 바당길을 벗어나 비밀정원같은 한라산숲길들을 걸을 예정이다. 우선 한라산둘레길이 시작되는 곳, <사려니숲길>부터 한곳 한곳 신록의 한라산으로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