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를 어떻게 걸을지 작정하지 않고 길 위로 나설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이 작정하고 또 작정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타고나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긴장 없이 스르르 스르르 절로 시작되는 일은 드문 법이니 결국은 그 작정들의 축적이 나은 결과로 휙~하고 생각과 함께 언제든 상관없이 아무 때나 그리고 아무 곳으로 길을 떠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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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그가 나를 인도한 혼돈 속에서 내가 ‘자유로움’의 방향을 찾기를 원했으며, 그러기 위해 그저 내가 ‘나’답기만을 바라는듯했다. 내가 ‘나’다울려면 ‘나’답지 않은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했기에 나를 얽어맨 것들로부터 먼저 떠나라고 속삭여줬다는 것을 한참을 그렇게 목소리가 인도하는 삶으로 살고 나서, 물끄러미 뒤를 돌아본 어느 순간, 지나온 궤적을 잇는 연결의 공통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길들여진 학교수업과 대학입학과 취직과 결혼과 출산과 부와 명예의 축적과 그리고 다시 그것들의 자식에 대한 강요와 세습으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들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재화를 다시 어떻게 순환시켜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런 부모의 역사가 자녀의 미래의 주춧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찾고 부딪혀보는 ‘만인만색’으로의 길을 살아가길 원하며 나를 포함한 우리 전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내가 그를 인식하던 인식하지 못했던 상관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작정하고 흔들어깨워 나를 두려움과 혼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흔들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몸과 마음이 경직되면 더욱 강하게 더욱 빈번하게 이전과 달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계속 흔들어댔다.
멈추지 않고 그 흔듦의 의도를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지속적으로.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흔들림에 나의 전부를 저항 없이 내맡기게 된 건 그 거부할 수 없는 엄격한 목소리 안에 숨겨진 깊은 연민과 애정을 문득문득 느낀 때문이었다. 목소리의 엄격함과 평온함이 분리되어 나에게로 전달되었으므로, 그것 자체만으로도 나의 혼돈은 몇 배로 가중되었지만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아이 때문에 마지못해 그랬지만 점점 그의 목소리 안에 담긴 실재하는 에너지가 전하는 순도와 온도가 작게나마 느껴지면서 내가 그를 믿을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의심이 많고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감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정확히 한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면서 누군가를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 나와 달리 한결같이 흔들림 없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수천 가지의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에 깊은 안도와 충만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느낌으로 그의 존재를 처음에 알기 시작했고 나아가 점점 그의 끊이지 않는 시선과 그의 동행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실재하는 존재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나다움’이라는 ‘자유로움’의 발견과 회복이라는 방향 선상에서 헛발질과 궤도수정의 시뮬레이션이 거듭 반복되었다. 반복이었으나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닌 상승하는 담금질과 단련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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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파일럿인 그는 알콜, 담배, 그리고 마약 중독이다. 여느 때처럼 그는 운항일정이 잡힌 전날도 밤늦게까지 만취했고 다음날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조종칸에 앉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더라면 그의 오랜 경력은 그 정도의 숙취로는 어떤 상황도 자유자재로 대응할 수 있게 해 주었겠지만, 그날은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일이 결국 벌어지고야 말았다.
갑작스레 고도 조작이 되지 않았고 항공기는 추락에 가까운 속도로 떨어졌다. 탑승객 전원의 생명이 위험했다. 깜짝 놀란 그는 탑승객들을 안심시키는 짧은 기내방송 중에도 보이지 않는 한 손으로는 오렌지주스에 술을 붓고 있었다.
비상착륙을 감행하기 위해 그는 기체를 뒤집어 배면비행으로 강하 속도를 낮추며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전무후무한 랜딩을 하면서 전원 사망의 최악의 결과를 막았다. 다행히 탑승객의 대부분이 무사했기에 그는 위기를 넘겨낸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영화는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항공사고 청문회장에서 몇 가지의 형식적인 질문으로 오랜 사고 수습절차가 마무리되는 찰나에 그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하고 만다.
영화 <플라이트 (2012)>는 이 대목에서 클라이맥스에 달하고 엔딩으로 치닿지만 그 시점 이후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영화의 대부분을 그가 처한 상황과 사고 속에서 그가 고뇌하는 지점의 압력을 가열차게 높여가고 있었을 뿐이다. 티핑포인트(임계점)라고 할만한 삶의 회피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 술과 담배와 마약에 중독된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기로 용기를 내고 삶을 그 이전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내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추락사고와 함께 가장 낮은 곳으로 치닫는 그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또 다른 변명으로 도망가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평생 해보지 못한 가장 높은 곳으로의 <FLIGHT (비행이자 탈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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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독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중독의 심층적 원인은 두려움이다.” 모든 중독현상은 그 형태를 불문하고 당사자들에게 있어 내적인 자율성이 결핍되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여기서 내적인 자율성이란 사람들이 그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도 자기 내면의 느낌이나 욕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내적인 자율성이 결여될 때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으로 인해 중독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년 동안 전개된 산업문명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그에 적대적인 자연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인 듯 보였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인간은 고대의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대인들에게 특징적이었던 내면적 안정성(극단적인 외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이 근대 이후로 내면적 불안정성(겉으로는 외적 안정성이 있는 듯 보이지만)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따라서 중독의 역사란 본질적으로 탈자연화 과정(인간과 자연의 분리)과 연결된 근대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
인간이 자연을,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적 자연인 본성까지도 ‘적'(대상)으로 대하게 될 때, 또 이러한 심층적 분열(소외)이 극복되지 못할 때, 결코 인간은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또 그 어떤 두려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회피(억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수단만 찾으려 든다. 바로 이것이 모든 중독현상의 실제 배경이다.
(그 형태를 불문하고) 중독이란 두려움 억압(회피)의 한 수단이다. 따라서 원래의 두려움이나 괴로움은 결코 극복되지 않고, 오히려 중독의 내성만 증가한다. 요컨대 사람들이 내면의 두려움에 대해 참기 어려운 느낌을 갖게 되므로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에 기대게 되는데, 이것이 곧 중독이란 질병으로 나타난다. “
– <중독의 시대 (강수돌+홀거하이데거 공저)>중에서
욕망과 경쟁 그리고 불만족의 무한반복으로 프로그램된 도시의 중독사회 시스템에서 낳고 길러진 나는 자연과 분리되고 ‘나다움’과 ‘자유로움’이 억압된 채 그로부터 야기된 두려움과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일중독과 사랑중독에 매몰되는 삶을 살아왔다.
‘나다움’과 ‘자유로움’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러저러한 나답지 못함의 주원인인 그런 중독현상들을 반드시 걷어내야만 했다. 그 중독이란 질병들로부터 치유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먼저 주어진 처방들이 바로 중독시스템의 부스터로 작용했던 회사생활의 결별이었고, 의존하고 갈애하는 사랑과의 헤어짐이었다. 그런 다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그런 이별들로 인한 깊은 상처의 치유를 통해 ‘나다움’과 ‘자유로움’의 회복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곳 외딴섬, 생명의 땅 제주도에서, 목소리는 그런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충분히 그리고 완전하게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안개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목소리가 인도하는 방향은 이제 분명하고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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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북쪽 올레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이번 <제주를 걷는 21가지 방법>에서는 올레 19코스 출발지점인 조천 만세동산에서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 넘어 해동포구에 이르는 약 8Km 구간을 선정했다.
제주도에서도 1919년 3.1 운동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출발해 조천읍 신흥리 밭담 길을 돌아 나오면 함덕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내내 청록색과 비취색의 제주 북쪽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2~3시간을 하염없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